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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기 좋은 뿌리기업 성종사

예술혼이 깃든 주조명가 ‘성종사’

우리가 만드는 것은 범종이라는 이름의 ‘작품

뿌리기업들의 대다수는 고객사가 요청하는 품질사양과 설계기준에 맞춰 제품을 가공해 납품한다. 그러나 고객 머릿속 구상과 종이에 휘갈려 놓은 스케치만으로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뿌리기업도 있다. 전통적 밀랍주조공법을 복원하고 신기술을 접목시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 ‘성종사’가 주인공이다. ‘2017 뿌리기업 명가’로 선정된 성종사는 국내외 사암 및 지자체에 8,000여구에 달하는 범종을 공급해 온 세계 최고의 범종제작사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12호 주철장이자 성종사의 수장인 원광식 대표는 “범종은 대량으로 찍어내는 주조품과 달리 혼(魂)이 깃든 예술작품”이라고 강조한다.

한국 최초의 범종제작사, 전통적 범종 제작기술을 깨우다

1954년 한국 최초의 범종 제작사로 설립된 성종사는 충북 진천에 최대 1만 5,000관(56.25톤) 규모의 종을 만들 수 있는 국내 최대의 범종 제작시설을 갖추고 있다. 설립 이래 65년 여 간 범종만을 전문적으로 제작해 온 성종사는 국내 최대 범종인 세계 평화의 종(37.5톤)과 대만 최대 범종인 명선사종(33톤)을 비롯해 총 8,000여구의 범종 제작 및 복원작업에 참여해 왔다. 1985년 광복 40년을 기념해 제작된 보신각종을 비롯해 1993년 대전엑스포대종, 1999년 충북천년대종, 1999년 임진각 평화의 종, 2005년 광주 민주의 종, 2006년 낙산사 동종 복원 등도 성종사의 손을 거친 작품들이다.

한국전쟁(6.25전쟁) 직후였던 ’50~’60년대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였다. 저마다 먹고살 걱정에 놓여 있던 이 시기 성종사 원광식 대표는 스승이자 8촌 형이었던 故 원국진 초대 사장의 권유로 1963년 성종사에 입문하면서 범종 만드는 일을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의 범종은 전통적으로 장인들에 의해 기술이 전수되고 계승되어 왔으나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기술이 후대로 이전되는 흐름이 강제적으로 차단되었다”고 말하는 원광식 대표는 “이러한 시기를 겪었기 때문에 범종은 예술품에서 먹고 살아야 하는 돈 벌이의 수단이 되었고, 전통적 기술의 복원에 대한 중요성은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다”고 회상한다. 이에 성종사 입문 10년만인 1973년 2대 대표로 취임한 원광식 대표는 더 이상 뿌리기술을 찾는 시간을 늦춰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전통적 범종 제작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원 대표는 한국 범종 제작기술의 뿌리를 찾기 위해 전국을 돌며 수소문 끝에 300여구의 범종을 찾아내 형태와 문양, 성분, 종소리의 원리 등을 연구했다. 또 아시아-태평양 전쟁(대동아전쟁)시 무기제조를 위해 일본인들이 빼앗아간 범종 중 한국에 없는 범종을 복원하기 위해 일본에 직접 방문해 크기가 작은 5구의 형틀을 직접 떠오기도 했다. 특히 원 대표는 197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범종 연구를 보다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학술단체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스님, 교수 등 전문가들과 의견을 모아 1978년 한국범종학회를 설립하고 한국 범종의 우수성을 대내외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경주 신라대종 행사 ⓒ성종사

전통에 현대적 가치 그리고 경쟁력을 더하다

’80년대에 들어서며 나라 살림이 나아지자 전국의 사암에선 범종을 복원코자하는 열망이커졌다. 때문에 ’70년대 중반부터 지속적으로 범종 연구에 매진해온 성종사는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경쟁사도 없던지라 제작의뢰가 쇄도하며 호황을 누렸다. “전통적 기법을 재현하며 우수한 품질 수준의 범종을 만들 수 없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했다”는 원광식 대표는 각고의 노력 끝에 1997년 소멸되었던 우리의 전통주조기법인 밀랍주조공법을 재현하는데 성공했다. 밀랍으로 범종의 모형을 정교하게 만든 뒤 이를 고령토와 점토를 혼합한 흙으로 거푸집을 만들어싸고, 거푸집 내부의 밀랍을 녹인 자리에 1200도의 쇳물(동,주석 합금)을 부어 만들어내는 이 기술을 복원한 공로를 인정받아 원 대표는 2000년 대한민국 명장 칭호를 얻었고, 2001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주철장으로 지정됐다.

“기술은 어떠한 형태로든 진보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원광식 대표는 “다만, 전통기술의 우수성을 알고 약점을 현대기술로 보완할 때 ‘우리 것’의 가치와 품질 경쟁력은 더욱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밀랍주조공법’을 재현한 원광식 대표는 “자연에서 나오는 소재를 사용하면 범종의 표면이 매끄럽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종사는 범종의 표면을 미려하게 만들기 위해 전통적인 밀랍주조법에 현대의 주조법을 접목했다”며 전통적 기법에 새로운 소재기술을 융합 및 접목한 사례들을 설명해주었다. 성종사의 기술개발 의지는 기업부설연구소 설립으로 이어졌고, 기업부설연구소에서는 2005년 5m이상의 초대형 범종까지 밀랍주조공법으로 제작이 가능하도록 한 ‘新밀랍주조공법’과 2015년 원가 25% 절감 및 음향을 개선한 범종용 신합금을 개발하면서 성종사 범종의 품질수준과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성종사의 축적된 기술노하우는 2016년 에밀레종으로 불리는 국보 29호인 경주 성덕대왕신종을 모델로 만든 신라대종을 복원시키면서 다시 한 번 빛을 발하게 된다. 2년여의 제작기간이 걸린 에밀레종은 원광식 대표가 쌓아온 기술의 집약으로 소리, 문양 등을 실제 에밀레종과 99% 흡사하게 만들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원 대표는 “신라대종을 복원하면서 범종을 만드는 일에 대한 열정을 넘어 막중한 책임감까지 느끼게 되었다”며 복원소감을 전했다.

명선사 범종을 안고있는 성종사 대표 ⓒ성종사

신라대종 ⓒ성종사

세계 최고의 범종 제작사 ‘성종사‘

성종사의 명성은 우리나라 안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원광식 대표의 손재주가 나라밖으로 널리 알려지자 중국과 베트남, 일본, 홍콩,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등 불교권 국가에서 성종사를 방문하는 일이 많아졌고, 범종 제작 의뢰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우리가 제작한 범종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해외시장 개척에 대한 가능성이 열렸고, 새로운 수요시장을 찾아 10여 년 전부터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고 말하는 성종사 기업부설연구소 소장이자 총괄이사인 원천수 이사는 “최근 5~6년 전부터 일본, 중국, 대만, 태국, 싱가포르, 홍콩, 인도네시아 등 불교권 국가로의 범종 수출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불교권 국가라 하더라도 국가·사회적 특성이나 국민적 정서, 전통들이 각국마다 다르기 때문에 자국의 전통을 최대 한 반영한 범종을 요구하게 된다. 특히 범종은 형태나 소재, 종의 소리가 천차만별인데도 불구하고 제작기술 관련 자료들 은 전무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가 자체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고객니즈에 맞게 시작품을 제작해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서 여느 뿌리산업 제품과 시장 공략의 차이가 있다고 원천수 이사는 설명한다.

자국의 문화와 특성을 파악해 자국에 맞는 범종을 우수한 품질로 만들어준다면 어느 누구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성종사의 이러한 노력은 해외시장 확대로 결실을 맺었다. 특히 원광식 대표와 원천수 이사는 “2013년 대만 타이중의 사찰 명선사(明善寺)로부터 초대형 범종을 주문받았던 일은 해외시장 개척의 어려움을 한 번에 씻기게 하는 쾌거”였다고 회상한다. 명선사는 기존 대만 최대 범종인 불광산사 범종 25.5톤보다 더 무겁고 큰 범종(33톤)을 성종사에 주문했고, 성종사는 제작기간 18개월 만에 이 범종을 완성했다고 한다. 특히 명선사종 표면에는 12,129자의 경전과 명선사 역대 조사(祖師) 70명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어 규모와 소리는 물론 예술적인 외관까지 현지인들의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

성종사 회사 내부 한쪽에 진열된 상패 ⓒ성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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